넷플릭스 더 스파이 결말 스포 엘리 코헨의 실화 이야기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며 봤다
넷플릭스 더 스파이 결말 스포 엘리 코헨의 실화 이야기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며 봤다
'더 스파이'는 몇년전에 넷플릭스에 나왔던 작품인데, 그 당시에는 안보고 이제서야 봤다. 총 6부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더 스파이'는 2019년 프랑스에서 제작됐다. 실존했던 인물인 '엘리 코헨'에 다룬 이야기인데, 이게 실화인게 믿기지가 않는다. 엘리 코헨이 남몰래 스파이 활동을 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이 참 가슴아팠을 것 같다. 되게 가정적인 남자로 나오던데... 아내가 너무 가엾다.
넷플릭스 '더 스파이'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만, 고위직 직함 과장설(부국방장관 등)과 일부 만남(아르헨, 시리아 고위층)은 사실 기반이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로 엘리 코헨은 '시리아 군부 고위층에서 극도로 신뢰받아 부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한다. 하지만, 역사적 문헌에 따르면, 드라마처럼 정식 임명된 적은 없으며, 부국방장관 직책 자체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식 제도는 1970년이후 등장한 것이다. '후보로 거론됐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으로 임명되지는 않았고, 직위 자체도 드라마속보다 현실은 덜 공식적이었다. 허구적 요소를 포함해 다소 드라마틱한 각색이 가미된 실화 드라마이다.
'더 스파이' 결말은 다음과 같다.
- 이중생활의 끝
엘리는 모사드의 카멜 아민 타베트 라는 가명으로 시리아 군, 정계 핵심에 깊숙이 침투한다. 사람들과의 진한 정은 계속되지만, 드라마는 마지막에 그가 내부에 너무 깊이 스며든 스스로를 잃어버린 상태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 마지막 임무와 체포
모사드의 지시로 다시 골칸 고원의 개발 계획 및 군사 요충지 관련 정보를 전송하던 중, 시리아 방첩대는 라디오 전파 위치를 추적하게 되고, 엘리는 통신 중에 체포된다.
- 공개 처형
드라마의 피날레는 엘리의 다마스쿠스 마르자 광장 공개 교수형 장면이다. 마지막에도 가족을 향한 편지를 남기며 면회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고독하게 교수형에 처해진다.
- 에필로그
드라마엔 자막으로 '엘리 코헨이 수집한 정보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령을 단기간에 가능케 했다'는 사실이 덧붙여진다.
엘리 코헨의 실제 주요 공작을 정리해보겠다.
1924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시리아계 유대인인 엘리 코헨. 그는 1957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모사드 또는 군 정보기관 훈련 수료 후 1960년대 초에 스파이로 투입됐다.
엘리 코헨은 1961년 아르헨티나로 먼저 파견돼 시리아 교민 사회에 접근했고, 1962년 다마스커스에 본격적으로 유입했다. 그러면서 고위 군부 정치 인사들과 교류했다. 그렇게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시리아 군사 시설을 촬영했고, 군사배치 정보를 수집했다. 이중에서 골란 고원 참호와 벙커 위치 정보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이 단시간에 지역을 장악하는데 확실한 도움이 됐다.
드라마 '더 스파이'에서 언급된 '유칼립투스 나무 심기'는 증거가 없거나 논란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엘리 코헨이 이 사실을 기록한 문서나 가족 증언에는 해당 언급이 없으며,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증거가 부족한 전설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시리아 장교들은 실제로 나무를 군사 시설 주변에 심었으며, 이스라엘 측에서는 표적 표시로 활용됐을 가능성이라 해석된다.
그는 1965년 1월, 정전 상황에서도 무전 송신을 멈추지 않았고, 시리아 비밀경찰과 소련 측이 위치를 추적해 체포했다. 결국 1965년 5월 18일 다마스커스 마르자 광장에서 공개 교수형을 당했다.
엘리 코헨은 사후에도 모사드 최고의 전설적 스파이로 여겨졌다. 2025년 5월 18일, 시리아에서 그의 유물 및 기록 약 2500점이 회수돼 이스라엘에 전달됐고, 부인 나디아 코헨에게 공개됐다. 하지만, 여전히 엘리 코헨의 유해는 반환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반환은 계속 추진 중이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